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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빛이 들어온 신호등을 바라본다. 오늘따라 기다리는 시간이 긴 것은 기분 탓일까. 다급해지는 마음을 누르며 숨을 들이마신다.
쫒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도 얼마 남지 않은 약속시간 탓에 서둘러야 했다. 바쁘게 길을 걸으며 상대방도 늦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솔직히 말하자면 원해서 잡힌 약속은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 이번 주 토요일. 4시에 다시 만난다면 좋겠는데요.
며칠 전 그가 작은 미소를 짓는 듯 애매한 느낌이 풍기는 말투로 강조하듯 내뱉던 말은 제 대답을 듣고 싶기보단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투가 가득했다. 하긴, 직급으로 보더라도 저쪽이 더 높은 위치인데 멋대로 거절해서야 안 되었다. 저 짧은 대화를 하며 느낀 것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이가 아니라는 평을 주고 싶으나 회사의 입장으로 봐선 놓치기엔 아깝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몇 십 년 같던 2분이 흘러 횡단보도는 초록불이 되었다. 건너려고 발을 옮기려던 순간 차도에 서 있는 검은색 소나타에 눈동자가 멈춘다. 별로 관심 있는 차종은 아니건만 왠지 모르게 눈에 익다. 기억을 떠올리려고 번호판을 훑어보지만 역시나 어중간한 기억은 제대로 반응해주지 않았다. 애써 다른 것에 집중하려 관심을 돌린 채 약속장소로 들어선다. 예약해 둔 자리를 찾아가니 아직 텅 빈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같이 예약해뒀었던 것 같은 커피 두 잔. 의자에 앉으며 상대도 늦는 것을 좋아해야할지 걱정해야할 지 고민되는 마음에 자연스레 인상이 구겨진다.
제 앞에서 식어가는 커피 잔의 빨대로 커피를 휘젓는데 근처에서 경적소리와 함께 쾅-, 하고 큰 소리가 들린다. 차차 웅성대며 모여드는 사람들과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가는 사람들. 그들 사이로 힐끗 고개를 내미니 소형트럭과 검은색 소나타가 충돌해선 짙은 연기를 내뿜고 있다. 저 차 아까 본 차 같은데. 스멀스멀 몸을 타고 올라오는 불안함에 소름끼친다.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밀치고 사고가 난 곳으로 다가간다. 트럭 운전사는 별로 큰 부상이 없는지 피가 나는 이마만 누른 채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다. 그런데 소나타 운전사는 기절한 건가. 운전대에 몸이 거의 기대져있는데 의식은 있는지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는 머리칼이 파르르 떨린다. 구급차가 오고 있긴 한가. 퍼뜩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려다가 말았다. 누가 신고를 해놓긴 했는지 어느새 구급차와 들것을 들고 다가오는 구급대원들. 이제 별 관심 쓰지 않고 돌아가면 되는데 왜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까. 머리를 긁적이다 들것에 실려 옮겨지던 소나타 차주를 보았다. 어려보이는 덩치지만 정장을 입은 걸 보니 어디 일하는 사람이려나. 멍하니 서서 자리를 떠나는 구급차를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난 약속이 있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와 창가를 한번 보고 시계를 보았다. 입구 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보니 아무리 뚫어져라 보고있어도 저는 상대의 얼굴을 모른다는 것에 생각이 닿았다. 하긴 자기가 예약한 자린데 알아서 찾아오겠지.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며 다시 시계를 본다.
이상하다. 약속 늦는 사람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시계는 이미 약속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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